2009/12/14 02:45 그놈이야기
소년은 욕심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우등상을 타는 것이 기준이었다. 꼭 반에서 몇등을 해야한다거나 하는 기준은 없었다. 우등상을 타면 어머니는 기뻐하며, 칭찬을 해주셨기 때문에, 소년은 개근상과 우등상을 타는 것으로 만족했다.
시골에서 대도시로 이사 후 한동안 우등상을 타지 못했다. 우등상 시상 기준이 시골에서는 평균 90점이었는데 새학교에서는 93점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우울했지만, 도시 내의 다른 학교로 전학 후 평균 90점으로 다시 우등상을 탈 수 있었고, 소년은 다시 만족했다.
중학교로 가서도 비슷했다. 소년은 반에서 수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상을 타고 만족했다.
선생들은 뭔가 기대를 하고 소년을 경시대회 등에 내보냈지만 성적은 별로였다. 아무도 소년에게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저 참가할 뿐이었다. 하루 학교를 쉰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변화가 생겼다. 친구 하나가 자기보다 성적이 낮다며 소년을 놀렸고, 난생 처음으로 소년은 누군가를 이기고 싶어졌다. 그 후로 소년은 자신 보다 상위권에 있던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쪽지에 적어서 책상 머리맡에 붙여뒀다. 그리고는 시험을 볼 때마다 자신보다 하위인 친구들이 적힌 쪽지는 버렸다. 일년여가 되기 전에 그 쪽지들은 모두 사라졌다. 소년은 다시 만족했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그런 자극은 다시 없었기에 소년이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 붙이는 일도 다시 없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담담했다. 고3이 되어서도 소년의 성적표에 도장을 찍어줄 때마다 하는 말은 '잘했지만, 네 인생이니 알아서 방심하지 말고 잘하라'였다. 소년은 도장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책임'이란 말을 되뇌였다. 소년은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인생을 혼자서 결정해 나갔다.
다음: 아무도 기뻐해주지 않았다.
시골에서 대도시로 이사 후 한동안 우등상을 타지 못했다. 우등상 시상 기준이 시골에서는 평균 90점이었는데 새학교에서는 93점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동안 우울했지만, 도시 내의 다른 학교로 전학 후 평균 90점으로 다시 우등상을 탈 수 있었고, 소년은 다시 만족했다.
중학교로 가서도 비슷했다. 소년은 반에서 수위의 성적을 거두었고 상을 타고 만족했다.
선생들은 뭔가 기대를 하고 소년을 경시대회 등에 내보냈지만 성적은 별로였다. 아무도 소년에게 경시대회를 준비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그저 참가할 뿐이었다. 하루 학교를 쉰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변화가 생겼다. 친구 하나가 자기보다 성적이 낮다며 소년을 놀렸고, 난생 처음으로 소년은 누군가를 이기고 싶어졌다. 그 후로 소년은 자신 보다 상위권에 있던 친구들 이름을 하나씩 쪽지에 적어서 책상 머리맡에 붙여뒀다. 그리고는 시험을 볼 때마다 자신보다 하위인 친구들이 적힌 쪽지는 버렸다. 일년여가 되기 전에 그 쪽지들은 모두 사라졌다. 소년은 다시 만족했고,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 후로 그런 자극은 다시 없었기에 소년이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 붙이는 일도 다시 없었다.
소년의 아버지는 담담했다. 고3이 되어서도 소년의 성적표에 도장을 찍어줄 때마다 하는 말은 '잘했지만, 네 인생이니 알아서 방심하지 말고 잘하라'였다. 소년은 도장을 받을 때마다 '자신의 인생은 자신의 책임'이란 말을 되뇌였다. 소년은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인생을 혼자서 결정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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